창립이야기
창립자의기도
역대총장
C.P.S. 내적영성과 덕목

-창립자 프란치스코 판너 대원장의 수도회 창립이야기-

 

  우리의 창립자 프란치스꼬 판너 아빠스는 남아프리카 줄루족 사이에서는 창시자요 개혁가이며 선교 개척자요 문명의 아버지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조명되어 졌다. 많은 이들은 그를 고통 속에서 철저히 단련받은 사람으로 존경하고 있다.
이 글은 창립자의 강론과 논고 및 편지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우리의 자산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트라피스트 수도승이었던 프란치스꼬 판너 아빠스는 유럽에서 열린 트라피스트 수도회 총회에서 아프리카 지역에 도움을 호소하는 소리에 응하는 사람이 없자 “아무도 가지 않겠다면 내가 가겠소!”라며 안정적인 수도원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강직하고 직선적인 성품의 소유자이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뛰어난 그는 당시, 아프리카의 복음화를 위해 가정의 구심점인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여성교육에 주력하고자 유럽에서 선교잡지인 물망초를 출판, 아프리카에서 수사들을 도와 일할 여성들을 모집하였다. 창립자는 공동체를 형성,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여자수도회를 창설하게 된다.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그는 보배로운 피를 상징하며 아프리카인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지는 “빨간색” 수도복을 수녀들에게 준다. 그리고 판너 아빠스는 그들을 나의 “빨간 수녀들” 또는 “ 마리안힐 수녀들”이라 불렀다.

“여러분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선교를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프란치스꼬 판너 아빠스는 우리 수도회의 목적을 이렇듯 명백하게 알려주었다.

  엄률 트라피스트의 회원이었던 그의 선교방법은 “침묵의 선교”였다. 아프리카인들은 수사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며 소임지 어디에서나 기도하기 위해 하루에 일곱 번씩 무릎을 꿇는 수사들을 지켜보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러나 트라피스트 수사들은 학교 교육과 종교수업, 아프리카인의 오두막을 찾는 가정방문 등 직접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 부분을 비롯하여 트라피스트 수사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보혈선교수녀들이 담당하게 된다.

“내가 나의 초대에 응해준 수녀들에게서 발견하고자 했던 것은 단 두 마디 말로 표현될 수 있으니, 바로 강인한 여성입니다.”

열악한 지역적 상황 안에서 그가 창설한 빨간 수녀들은 언제고 항상 강인해야 했었다. 그들은 상식을 갖추고 활동적이며 진취적이며 용감했다.
“보혈수녀들은 선교지에서 성혈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수녀들은 이 지향을 위해서 자신들의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보혈선교수녀들에게 있어 프란치스꼬 판너 아빠스는 “존경하는 창립자 아버지”였으며, 그 또한 보혈선교수녀회의 고유한 정체성을 위해 투신했다.
“숨을 쉬는 한 내가 수녀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 창립자를 가까이에서 모셨던 애밀리아나 수녀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그분과 결부되는 무슨 기적이나 여타의 특별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그분의 평온한 믿음과 한없는 인내심이 내게는 기적이나 같았다....한결같이 나를 압도하는 것은 그분이 당신의 체면을 손상시킨 이들을 한번도 비난한 적이 없었으며,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평가를 내리는 일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토회 수도승의 관습이 그러했듯이 아빠스는 자신이 세운 시설을 모두 마리아께 봉헌했고 특별한 신심으로 마리아를 공경했다.
“온갖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주실 확고한 수호자는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주님의 어머니시다. 우리가 그분을 우러러 공경한다면, 모든 고뇌는 반드시 사라질 것이다.”

“성모님께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것은 자신의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이 은총을 티없이 더럽히지 않고 간직한 것은 그분의 성덕이고 개인의 공로였습니다. 참된 수덕의 실행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지역주민들에게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모범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버지 창립자는 승리를 거머쥐도록 달리라는 자신의 좌우명에 충실하셨다.
그는 사는 동안 내내 엄격한 트라피스트 회칙을 준수했다.
일흔이 훌쩍 넘긴 나이에도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 정각에 미사를 드렸고 아침식사 후에는 직접 닦은 십자가의 길을 기어오르며 기도를 바쳤다. 관절염과 몹시 고통스러운 동맥경화로 인해서 미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을 때조차 4시에 일어나 성체조배를 했다.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카르트지오 수녀회나 트라피스트 수녀회 또는 여타의 참회 수녀회가 아니라 활동적인 선교 수도회였습니다. 수녀들은 미소 띤 얼굴로 아프리카인들의 오두막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은 친절하고 쾌활하고 자상하고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수녀가 침울하고 무뚝뚝하거나 인상을 쓰거나 비탄에 잠겨 있다면, 이 사람들을 조금도 끌어당기지 못합니다....내가 수녀들에게 불러 넣고자 하는 것은 친절함과 명랑함의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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